'제2의 삶' 개척 나선 우주인 고산
난 우주관광객임을 거부했다
입력시간 : 2011.10.02 17:18:28
우주인을 꿈꾸던 고산이 창업 전도사로 변신했다. 그는 “한국 젊은이들의 탈출구를 열어줄 수 있는 획기적인 창업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주인 고산이 '창업 전도사'로 변신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 탑승자로 선발되었으나 우주선 발사 한 달을 앞두고 전격 교체되면서 무수한 억측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이후 항공우주연구원을 거쳐 하버드대 케네디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그가 우주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듯한 창업 전도사가 되어 한국에 왔다.
그는 지난 2월 비영리법인 타이드 인스티튜트(TIDE institute)를 설립, 젊은이들의 창업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당장 10월 20~22일 미국 실리콘밸리 싱귤래러티 대학에서, 29~30일에는 보스턴 MIT에서 한국 유학생들과 한인사회의 유능한 인재들을 대상으로 창업경진대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우주인 이야기는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창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에너지가 넘쳐났다.
_ 2008년 우주선 발사 한 달을 남겨두고 '대한민국 1호 우주인'의 자리를 놓쳤다. 정확한 이유가 뭐였나.
"언론에 나온 대로다. 대동소이하다. 사실 그런 얘기 하면 항공우주연구원에서 별로 안 좋아한다.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다. (그래도 기자가 계속 질문을 하자) 언론에 보도된 것이 맞다. 내가 공부를 하기 위해서 교재를 봤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교재를 본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만 이해하면 정확하다."
_ 그게 뭐가 문제인가.
"보지 않아야 하는 것을 본 것이다. 우리 계약서상에는 그런 교육을 받지 않게 되어 있는데 내가 본 것이다."
_ 책을 집에 가져간 것이 문제가 됐나.
"집에 가져간 게 문제가 아니라 복사를 했던 게 문제였다. 가져오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보고 싶어도 하룻밤에 볼 수 없으니까 가져온 것이다. 여기까지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이게 나만 관련된 것은 아니다. 내가 함부로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 사람들도 관련이 있다. 그들이 도와줘서 가능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라는 음모론들이 있는데,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왜 그랬나'가 중요하다. '가만 있으면 되는 건데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_ 왜 그랬나.
"나 또는 많은 한국 국민들이 생각하던 우주인 상이 있다. 최초의 우주인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라는 것이 있었고 내가 확실히 알아야 하는 것이 있었다. 내가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알아야 했다. 돌아와서도 같이 나누려면 그랬다. 단순히 우주에 갔다 오는 것도 의미는 있다. 그런데 뭐랄까, 뭔가를 더 배워야 했다. 남는 게 더 있었으면 했다. 일단 계약서상에는 그런 부분이 없었다. 거기 러시아 우주인 친구들은 나에게 그 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누가 책을 줬겠나. 훔친 것도 아니고. 우리는 도서관에 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도서관이 있는 줄도 몰랐다. 러시아 친구들이 도와줘서 보게 됐다. 그 친구들이 오히려 답답해했다."
_ 그럼 거기서 뭘 배웠나.
"최소한의 필요한 것들만 배웠다. 우주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우주에 가서 실험할 수 있는 것, '이 전원플러그에는 이걸 꽂아야 한다'는 등의 것이다. 또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나 열흘 간의 비행에 필요한 것들을 배웠다. 기초적인 원리들에 한정된다. 러시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게 맞다. 우리 계약 자체도 그랬다. 우주인 사업을 우주 관광객 사업으로 폄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런 유사한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_ 책의 내용은 뭐였나.
"그건 말할 수 없다."
_ 교육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많았나.
"그렇다. 그런데 러시아 사람들 말도 맞다.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면 그들은 '당신들은 이거 배우러 여기 와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이고 국가대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명의 고객에 불과했다. 처음에 계속 그랬다. 호칭부터 기분 나빴다. 호칭은 '우주인'과 '참가자' 두 가지가 있었다. 처음에는 계속 참가자로 불렀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우주인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1년 정도 같이 지내다가 미국 나사(NASA)에서 기자회견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까지는 내가 우주에 올라가게 되어있었다. 우리 대표 두 명과 국제우주정거장에 같이 갈 미국 우주인들이 모여서 회견을 했다. 여러 가지 물었다. 거기서 답을 하면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나라에서 왜 이게 중요한지 등에 대해 말하니까 비로소 우주인으로 인정해줬다. 그 친구들이 내 마음을 들여다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후 '너는 너의 나라를 대표하는 우주인'이라고 불러줬다."
_ 일종의 차별인가.
"차별이라기보다는 그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우리의 자세가 달랐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했다. 일단 우주인으로 부른 뒤에는 계속 우주인이었다. 이소연이랑 같이 갔지만 소연이랑 경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외국 우주인들과 경쟁한다고 생각했다. 러시아어를 좀 배워서 갔고 거기서도 배웠다. 러시아에서 과목이 끝날 때마다 오랄 테스트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 당시 내가 고집했던 것은 러시아어로 대답하기였다. 내용적인 면은 숙지하고 있지만 뭔가를 더 보여줘야 했다. 한국인들은 최소한의 자세가 되어있다는 것 말이다. 한국에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뽑혔는데 이 정도로 성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어로 대답했다. 늘 옆에 붙어있던 통역이 '다른 우주인들이나 교육생들도 많이 봤지만 러시아어로 대답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도 그런 자세를 아주 높게 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_ 단순한 우주관광객으로라도 만족할 수는 없었나.
"그러면 속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겠나. 누구든 어느 정도의 진실성만 있었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물론 나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우주인을 뽑는 구나, 우리나라가 이렇게 성장을 했구나, 비록 우리 우주선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우주인을 배출하는 구나, 라고 생각을 하는데 가는 사람이 스스로 나는 우주인이 아니라 우주관광객이라고 생각하면 뭐가 되겠나. 거기다 300억원이라는 돈이 투입됐다. 최대한 얻을 것은 얻어야 했다. 유리 가가린이나 닐 암스트롱처럼 수많은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쌓아놓은 성(城)의 정점에 탑승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앞으로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되려면 최대한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상식으로는 그게 맞았다. 우리 선배들도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_ 당시 행동에 대해 후회는 없나.
"후회는 전혀 없다. 오히려 굉장히 많은 것을 얻었다. 단순한 우주관광객이라고 생각하고 무리없이 우주선을 탔더라면 그냥 우주인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 관련된 다른 일을 벌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우주인이라는 것 말고, 한국 사람이 더 된 것 같다. 훈련 받는 1년 간 내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커졌다.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발전해왔지만 외국에 나가서 보니까 조금 더 채워나가야 될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국가적인 프로젝트의 중심에서 보는 기회를 가져봤다. 모두들 굉장히 열심히 한다. 공무원도 그랬다. 하지만 채워야 할 부분들이 많이 보였다. 발전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으면 쉽게 따라잡힐 수 있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해왔던 전략과는 완전히 다른 전략을 택하지 않으면 추격당할 수 있고 따라잡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_ 스파이 설도 있었다.
"전혀 근거 없는 얘기다."
_ 이소연씨와 최근 만난 적이 있나.
"항공우주연구원에 있을 때 만난 적이 있지만 그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보지 못했다."
_ 이후 주로 뭘 하고 지냈나.
"러시아 갔다 온 뒤부터 항공우주연구원에 있었다.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고 싶어서 연구원 내에서 정책기획부로 부서를 옮겼다. 어차피 전공이 우주가 아니었다. 유인 우주 분야가 아니라면 기여할 부분이 적었다. 물론 나중에는 기여할 수도 있겠다. 정책 쪽에 뜻이 있었고. 2년 간 의무 근무를 마쳤다. 정책에 관심은 많았지만 잘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외국 대학 정책대학원 여러 곳에 지원했다. 하버드대에서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다. 운이 좋았다. 이곳에서 미래의 세계 지도자들을 만나고 좋은 교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인사이트를 볼 수 있었다. 아직 학업은 끝난 것이 아니라 1년이 남아있다. 방학 때 들어왔다가 지금 진행하는 창업관련 일이 속도를 받아서 일단 휴학 처리를 한 상태다."
_ 강연을 많이 했는데.
"미국 가기 전에 많이 했다. 대상은 다양했다. 초등학생을 비롯해 노인들까지. 1년 간의 경험을 나눠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 부르는 곳에는 다 갔다. 부르지 않는 곳도 찾아갔다. 학생들에게 꿈을 주는 교육적인 효과가 컸다고 본다. 그런 꿈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꿈이 필요한 사람들과 강연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달랐다. 강연 신청을 하는 학생들은 과학고나 영재학교 등 이미 주변에서 많이 챙겨주는 집단이다. 이미 꿈이 잘 커가고 있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구석에 있는 아이들은 이런 게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우주인을 배출했는지도 모른다. 기본 취지랑 안 맞았다. 그래서 직접 접촉을 해서 찾아 다녔다. 고아원, 소년원, 낙도 등을 찾아 다녔다. 그들에게 잠재된 꿈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강연 내용은 기본적으로 우주인 훈련 받았던 내용들, 내가 느꼈던 것들을 나이게 맞게 설명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우주인에서 탈락했던 상황에서 느꼈던 점들,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등에 관한 것을 얘기했다. 남들에게는 힘들어 보였겠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신념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우주인 훈련을 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 안 가진 것만 집중해서 들여다보니까 힘들게 생각이 되는 것이다.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공감해주는 친구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도 힘을 내고 나도 덕분에 힘이 난다. 그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힘을 내라는 것도 나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아주 좋았던 기억이다. 아이들도 좋아한다. 초등학생 대상 강의가 가장 어렵다. 초등학생들이 이해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다 느낌으로 이해한다. '이런 느낌으로 말하는구나'라고 받아들인다."
_ 우주인 탈락에 따른 가슴앓이는 없었나.
"정말 없었다. 순간적인 실수를 통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쌓여왔던 것들이 그 사건으로 밖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훈련 받으면서 내내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나 스스로는 문제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걱정 많이 했다. 그리고 지지도 많이 해줬다. 그래서 괜찮았다."
_ 요즘 주요 관심사항은.
"기본적으로 과학기술 정책이다. 그 중 한 꼭지로 중요한 것이 인재정책이다. 쉽게 얘기하면 이공계 기피, 이탈 현상이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주변에서 너무 많이 봤다. 과학기술 빼면 우리나라 뭐 없다. 인재들이 없다. 과학기술 쪽으로 유도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는데 가장 좋은 소재가 창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업을 키워드로 해서 주변에 과학기술을 묶는 것이다. 융복합 얘기도 많이 한다. 창업이라는 것이 융복합을 이루어내는 키워드이고, 세계적 추세다. 이쪽에 새로운 시장도 열린다. 창업이라는 것이 젊은 세대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_ 창업 얘기 좀 하자.
"과학기술 정책을 공부하겠다고 나섰다가 하버드대를 운 좋게 가게 됐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뭘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런 중에 우연히 실리콘밸리의 싱귤래러티 대학을 들르게 됐다. 거기서 첨단과학기술, 융복합기술 등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미국에서 말하는 첨단과학기술이 뭔가를 알아보자고 해서 이 대학에 10주 동안 머물렀다. 창업프로그램인데 너무 좋았다. 처음 4주 동안은 바이오 나노 에너지 스페이스 컴퓨터 사이언스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불러서 학생들에게 집중적으로 강의를 한다. 전문가는 연구자도 있고 그 분야에서 창업한 사람들도 있다. 이후 3주 동안은 실리콘밸리에 가서 창업을 어떻게 하는지, 새롭게 펼쳐지는 신대륙 즉 이머징마켓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직접 보고 느낀다. 나머지 기간은 학생들이 직접 팀을 꾸려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발표하면서 투자를 받는다. 이 프로그램에서 회사가 3개씩 만들어진다. 나는 창업하려고 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을 알게 됐다. 왜 그런 정신을 불러일으키는가를 생각해봤다. 여기서는 지금 막 태동하고 있는 여러 분야의 기술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미래에 펼쳐질 기술들이다. 미래의 모습을 한 걸음 앞서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어디로 가게 될지를 한 걸음 앞서 볼 수 있다면 도전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캄캄한 암흑 속에서 한 걸음 내딛기가 불편하지만 일단 내디디면 그런 도전정신이 일어난다. 우리나라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즐거운 경험이었다. 청년들의 역동성과 관련해서 특히나 이공계는 이런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준비를 했다. 지난 2월에 비영리법인인 타이드 인스티튜트(TIDE institute)를 한국에서 설립했다. 타이드는 기술(Technology)과 상상력(Imagination), 디자인(Design),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뜻하는 영어단어 앞자리를 조합한 말이다. 새로운 기술과 상상력, 디자인 능력을 갖춘 창업자를 길러내기 위한 것이다. 지난 7월에 첫번째 행사를 했다. 참가자들이 2박3일 동안 팀을 만들어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비즈니스를 만드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 결과물도 굉장히 신선한 것들이 많았다. 심사위원들도 놀랐다. 이런 것들이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이고, 이런 장을 마련해 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확신을 갖게 됐다. 8월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과 같이 유사한 행사를 진행했다."
_ 해외에서도 활동 계획이 있나.
"10월 20~22일 싱귤래러티 대학에서 창업경진대회를 한다. 정식 명칭은 '제1회 앙트러프르너십(기업가정신) 대회'다. 한국 유학생과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한다. 기술개발 창업을 지원하는 행사다. 한인 유학생들 중에 유능한 인재들이 많다. 하지만 결국은 한국에 안 들어온다.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연구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손해다. 사실 그들이 글로벌 창업을 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이다. 양쪽의 문화를 다 알고 있다. 이 사람들에게 한국이 둥지가 되어 창업을 해서 알을 깨고 글로벌 사회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10월 29~30일에는 보스턴의 MIT대에서 진행한다."
_ 행사 비용은.
"펀드 레이징을 했다.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연구재단 등에서 지원을 했다. 대기업 지원은 없었다. 한국전자인증, 게임회사 등도 참여했다. 단발성 행사가 아니고 미국뿐 아니라 중국 유럽 브라질 등에서도 열 생각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인들 간에 국제적인 창업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국내 시장은 크지 않다. 네트워크가 잘 형성된다면 더 많은 기회가 젊은이들에게 주어질 수 있다. 내년에는 큰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 국내 전문가들 모시고, 참가자들을 많이 뽑을 생각이다. 이런 행사를 통해 우리가 뭔가를 세계에 던질 수 있는 그런 마인드를 심어주고 싶다. 기성세대 덕분에 우리나라의 추격형 전략이 지금까지는 잘 먹혀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나라가 한걸음 도약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창업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이런 것을 만들어줘야 한다."
_ 진행은 잘 되나.
"너무 잘 된다. 다들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이 이 문제를 지적했었는데 왜 아무도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 부처나 사업체 등에서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필요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다. 비영리기관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우리는 일종의 NGO지만 과거에는 NGO가 정부를 비판하는 역할만 했다. 하지만 NGO의 역할은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의 손길이 안 가는 곳을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되어야 한다. 제한된 리소스를 잘 활용해서 협력해야 한다. 행사를 마쳤을 때 참가자들의 반응이 너무 좋다. 유익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판을 잘 벌여서 그 사람들이 많이 얻어가는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굉장히 뿌듯하다. 실제 창업을 했던 팀이 오기도 하고, 창업을 준비하는 팀도 있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개발자나 디자이너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앞으로는 이를 지원하는 조직을 만들 생각도 하고 있다. 그래서 실제적인 창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
_ 기존의 창업 인큐베이터와는 어떻게 다른가.
"창업 인큐베이터는 주로 IT분야에 국한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인큐베이팅하기 좋은 주제가 IT이기는 하다. 하지만 과학기술 분야는 매우 넓다. 우리는 IT에만 국한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앱을 개발할 경우, 앱이 가상공간에서만 쓰이는 것이라면 한계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실물과 연결되어야 폭발력이 생긴다. IT기술은 어떤 경우에도 필요하지만 다른 기술에서도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스펙트럼을 넓게 가져가고 싶다. 글로벌한 창업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외국의 벤처캐피탈과도 연결을 하고 있다. 이런 것을 바탕으로 미국 중국 등으로 글로벌한 창업을 지원할 것이다. 실제 행동가로 뛰어들어서 문제를 고쳐보고 싶다. 분명히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_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을 자주 언급한다.
"요즘에 특히 그렇다. 젊은이들의 상황이 답답하다. 실리콘밸리에 실제로 가보니 그 분위기가 너무나 부러웠다. 내 주변에 있는 젊은 친구들은 답답해하는 상황이다. 미국 아이들도 따지고 보면 답답하고 별 거 없다. 그런데도 마음자세가 달랐다.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서 그들과 얘기를 하면 '나는 이런 걸로 창업을 할 거야'라고 말한다. 물론 창업에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굉장히 즐겁게 준비를 한다. 실패하기도 한다.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더라도 자기 생각이 있다. 이런 것들이 몇 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수십년간 실리콘밸리에서 쌓여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라면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희망을 갖고 즐겁게 살 수 있는 '다이내믹 코리아'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분명히 역동성이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역동성이 조금씩 사라진 것 같다. 그런 것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측면에서 도전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즐겁게 하고 사회를 더 활기차게 할 것이다."
■ 고산은 누구
197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인지과학협동과정을 마쳤다. 2008년 우주인 훈련을 끝낸 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지금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공공정책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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