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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 지침서 Ezra Son 201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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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 지침서(CELL LEADER'S MANUAL)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흥분되는 일은 왕중 왕이신 주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는 일입니다. 우리의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양떼를 돌보고, 아직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을 찾아 주님께로 인도하는 목자의 삶이야말로 가장 보람있는 일입니다.

당신이 목자로 섬길 작은 교회인 ‘사랑방’은 신약성시대의 교회를 모델로 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삶을 같이하시며 보여 주셨고, 부활하신 후 성령을 보내 주시면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수 천 명의 제자들이 작은 단위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다니며 모이고 사역했던 것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행2:46). 그 후에 생긴 모든 교회도 사랑방 교회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로마서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로마의 여러 성도들에게 문안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로마 교회가 여러 개의 그룹으로 구성된 셀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지도자로 있던 교회(5절, “저의 교회”), 아순그리도와 다른 리더들을 중심으로 한 교회(14절), 빌롤로고와 다른 리더들을 중심으로한 교회(15절) 등이 있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에게는 에베소에 있을 때도 그들을 중심으로한 교회가 있었고(골4:15), 골로새 교회 안에는 빌레몬을 중심으로한 교회가 있었습니다(몬2). 이런 예들만 봐도 1세기의 교회들이 셀 교회였음이 분명합니다.

초대 교회들은 이런 ‘셀’을 기본 단위로 하여 신앙의 가족으로 뭉치며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경험했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고 변화되면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취했습니다. 이 신약성경의 모델이 지난 2천년 동안 잊혀져 왔으나, 20세기 후반인 지금 전세계적으로 성령님에 의해 다시 부활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서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성경에 근접한 교회를 만들려고 시작했던 많은 교회들이 거의 대동소이한 사역의 형태를 갖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책을 보고 배운 것도 아니고, 견학을 가서 보고 배운 것도 아닌데 거의 똑같은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은 성령님께서 지금 성경적인 모델의 교회를 부활시키고 계시다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바로 이 성령님께서 부활시키신 ‘셀 교회’의 사역자인 것입니다. 이런 새 물결 운동에 당신을 불러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명감을 갖고 임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립시다. 우리가 힘을 합하여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이루려고 할 때, 주님께서 교회다운 교회, 셀다운 셀을 당신을 통해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Family of God)

  사랑방 그룹을 한마디로 얘기하라면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가족이 혈육으로 맺어졌다면, 하나님의 가족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가족에 속하게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크리스챤들이 지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은 그들을 각 지역에 있는 지역 교회에 속하게 하여 하나님의 가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수행해 나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지역 교회 안에 또 작은 단위로서의 가까운 가족을 형성하여 그 안에서 육신의 가족 못지 않은, 아니 그 이상의 관계를 가지고 연합하는 사람들이 바라 셀 그룹입니다. 그러므로 셀 그룹 그 자체가 또한 교회이며 공동체입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안의 교회에서 누구나 하나를 이루는 공동체가 되었음을 쓴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 안에서는 이제 어떤 차별이 있을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바깥에서 헤매던 인생들이 이제 그리스도의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운명을 같이 나누는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만 들어오면 과거의 어떤 불행이나 열등한 것이나 괴로운 팔자나…이런 것들이 다 눈 녹듯이 녹아져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로만 설명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이고 셀 그룹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교회의 모습이 과연 그렇습니까? 정말 성경이 말하는 한 운명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따로 따로 놀지 않습니까? 그 안에서 인간적인 조건에 의해 차별하고 더 인정하고 덜 인정하는 그런 세상적인 모습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가족 관계라면 이 세상의 어떤 관계보다 더 가까운 관계이고 또 세상의 가치 기준들을 초월하고 그리스도 안의 신분만을 가지고 서로 귀하게 여기는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과연 오늘날 육신의 가족관계 이상으로 가까운 그리스도 안의 관계를 보기가 쉬우며 인간 조건에 관계없이 하나를 이룬 공동체를 보기가 그렇게 쉽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가 불신자들이 보는 앞에서 힘이 없는 것입니다. 참 가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관계가 많은 사람들의 형식적인 연합이며,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관계를 ‘막대기 신앙인들’이 ‘콩자루 교회’를 이루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교회 공동체에는 거의 관심이 없고, 하나님과는 꽤 잘 통한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막대기 신앙인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면 틀림없이 ‘콩자루 교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콩을 자루에 잔뜩 넣어 보십시오. 자루 안에 있을 때는 모여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콩과는 관계없이 존재할 따름입니다. 자루만 쏟으면, 각기 이리 저리 맘대로 굴러가 버립니다. 주일 예배는 같이 드리고, 구역 예배 때 같이 모이고, 기도회 때도… 많은 모임들을 같이 하지만, 그런 행사들을 끝내면 다 제각각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리는 교회가 바로 콩자루 교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메주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콩이라도 열을 가하면 딱딱하던 껍데기와 속이 푸석푸석해지면서, 속에서 진액이 나와 다른 콩들과 함께 이리 저리 붙어버립니다. 즉 콩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포기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메주를 만들 듯, 자신을 부인하고, 포기하고, 주님께 온전히 항복한 크리스챤들이 모이면 꼭 메주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서로가 한 운명이 되어 한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이런 교회를 ‘메주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족의 참모습입니다.

셀 그룹 사역은 잘못된 교회의 모습을 타파하고 일신하여 참다운 운명 공동체인 하나님의 가족을 오늘날 재현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성경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형제?자매가 서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함께 살고 함께 죽는, 그런 모습의 교회, 즉 예수님께서 디자인하신 바로 교회를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셀 리더는 이런 하나님 가족의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경험하며 모든 양들이 그런 공동체를 이루게 되도록 앞장서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셀이고 또 셀 리더의 모습이기 때문에, 셀 안에서는 육신의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같은 종류의 일들이 벌어지게 되어있고, 또한 셀 리더는 육신의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 셀 구성원들을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고, 서로 격려하고, 관계의 문제가 일어나서 괴로워하다가 해결하고, 참고 인내하고, 등을 두드려 주고…이러한 일들이 육신의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일들이 셀 안에서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런 하나님의 가족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되므로 육신의 가족 관계에서는 볼 수 없는 더 진한 사랑의 관계가 나타나야만 됩니다. 같은 하나님을 모시고 영원히 하나님과 공통된 목적과 관심을 나누는 존재가 되었으므로 이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만이 우리를 유일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육신의 가족보다도 더 진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셀 리더도 역시 육신의 부모를 뛰어넘는 하나님 차원의 사랑을 가지고 양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확실하게 될 때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임을 보게 되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34, 35절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했던” 그런 차원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때, 이 세상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차원은 요한복음 13:1에서 볼 수 있습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책임지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제자들을 그렇게 책임지시며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이 참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육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자기를 찾으러 왔을 때,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12:49-50)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어야 하고, 이것이 셀 그룹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의 참 사랑의 모습을 아래의 구절들을 읽으며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사무엘 상 18:1-4, 19:1-7, 20:1-42, 23:15-18, 사무엘하 1:26
룻기 1:1-18
로마서 16;3, 4
디모데전서 1:1,2 디모데후서 1:1, 2 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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